전북 진안의 마이산은 계절과 방향, 시간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특별한 산입니다. 두 봉우리가 말의 귀처럼 솟아올라 이름 붙여졌고, 부부의 어깨처럼, 혹은 돛대를 세운 배처럼, 부부산, 속금산, 문필봉 등 다양한 별칭을 지니고 있습니다. 전북 진안의 상징이자 오랜 세월 수많은 별칭을 얻은 산, 마이산을 걸어보았습니다.
금당사에서 시작되는 길


마이산 남쪽 금당사 일주문 앞에서 여정을 시작합니다. 금당사는 약 1,300년의 역사를 지닌 사찰로 전해지지만 창건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백제 의자왕 때라는 이야기와 신라 현덕왕 때라는 기록이 전해질 뿐입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뒤 17세기 숙종 때 현 위치에 다시 세워졌으며, 지금도 극락보전의 팔작지붕과 석탑 기단에서 깊은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극락보전에는 조선 후기 만들어진 목조 아미타불좌상은 온화한 미소로 참배객을 맞이합니다. 이곳은 동학농민운동을 이끈 전봉준의 딸 전옥례가 피신했던 곳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금당사에는 길이 9m에 이르는 조선 후기 괘불탱화와 세조 때 내려진 공식 교지라는 귀한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탑영제와 부부공원

금당사에서 10분 정도 걷다 보면 탑영제라 불리는 저수지가 나타납니다. 잔잔한 물결 위로 마이산 봉우리가 비치며, 주변 풍경을 한 폭의 그림처럼 담아냅니다.
저수지 끝에는 조선 후기 부부 시인으로 유명한 삼의당 김씨와 담락당 하립을 기리는 부부공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같은 해, 같은 마을에서 태어나 평생을 함께 시를 지으며 살았던 이들은 진안으로 이주해 부부의 정을 이어갔습니다. 부부시인의 시비와 사당이 있는 공원은 마이산 두 봉우리처럼 서로를 닮아 있습니다. 이곳은 두 시인의 애틋한 사랑과 시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산의 별칭 ‘부부산’, 산신 부부의 전설도 전해오는데, 자연과 인간 삶이 조응하듯 얽혀 있는 이야기라 더욱 의미 깊습니다.
신비로운 돌탑의 사찰, 탑사



'탑사'는 CNN이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찰로 소개했고, 프랑스 미슐랭 그린 가이드가 별 세 개, 최고 등급을 받은 곳입니다. 19세기 이갑룡 처사가 30여 년간 홀로 108기의 석탑을 쌓았다고 전해지며, 지금도 80여 기가 남아 있습니다. 천지탑, 오방탑 등 각각 이름을 달리한 돌탑은 보는 이로 하여금 "왜 꼭 이곳에 탑을 올렸을까?"라는 의문이 자연스레 떠오르지만, 그 안에는 간절한 염원과 기도가 담겨 있는 듯합니다. 돌탑 곁에는 능소화가 오래된 절벽을 타고 오르는 모습이 보입니다. 단 하나의 줄기를 의지한 채 40m 절벽 위에 꽃을 피운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절묘하고 신비로운 풍경이었습니다. 여름철 절벽에 핀 주황빛 능소화의 꽃말이 ‘그리움’과 ‘기다림’이라는 점은 이 풍경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듭니다.
태조 이성계의 흔적이 남은 은수사


탑사에서 오른쪽 길로 오르면 은수사가 나옵니다. 마치 거대한 바위를 등에 멘 듯한 독특한 풍광 속에 자리한 절입니다. 고려 말, 태조 이성계가 건국의 뜻을 품고 기도했던 절로, 이성계가 마신 물이 은처럼 맑다 하여 절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집니다. 사찰 안에는 이성계가 직접 심은 청실배나무와 줄사철나무가 자라고 있으며, 현재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마이산은 신라 때는 서다산, 고려 때는 용출봉으로 불렸는데, 조선 초기에는 태조 이성계가 속금산으로 이름 지었다.조선 건국 전 꿈에서 신인이 나타나 이성계에게 금척을 주면서 "이것을 가지고 국가를 가지런히 하라"는 말을 들었는데 후일 이성계가 마이산을 지나가다 산봉우리가 마치 꿈에서 본 금척을 묶어놓은 듯하다고 해 '속금산'이라 명명했다고 한다. 시대마다 달리 불리며 그 역사적 의미를 보여줍니다.
숲길 산책, 연인의길

천왕문을 지나면 연인의길이 이어집니다. 원래 마이산 북쪽 진입로였던 이 길은 지금은 걷기 좋은 산책로로 바뀌었습니다. 숲속에는 스마일존, 포옹존, 프로포즈존 같은 테마 조형물이 설치되어 연인의 사랑을 표현합니다. 서어나무와 단풍나무, 리기다소나무 등이 어우러진 숲길은 여름에도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며, 계절마다 다른 매력을 보여줍니다. 길 끝에 이르면 물에 비친 두 봉우리가 장관을 이루는 사양제가 반깁니다. 이곳은 마이산 최고의 포토존으로 불립니다.
사계절에 따라 변하는 마이산의 얼굴



마이산은 계절마다 다른 이름과 풍경을 보여줍니다. 봄에는 안개 사이 돛대봉, 여름엔 용의 뿔 같은 용각봉, 가을이면 붉게 물든 마이봉, 겨울에는 먹을 머금은 붓끝 문필봉으로 불립니다. 보는 방향과 시간에 따라 부부의 어깨, 말의 귀, 돛단배 등 다양한 형태로 변합니다.
돌탑을 왜 쌓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누군가의 간절한 기도와 바람이 돌 위에, 탑 위에 켜켜이 쌓인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이산은 그 자체로 신비이자, 인간의 삶과 염원이 투영된 상징입니다.
여행 팁
- 진안고원길은 총 210km, 15개 구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마이산길은 그중 가장 인기 있는 코스입니다.
- 남부주차장에서 출발하면 금당사-탑영제-부부공원-탑사-은수사-천왕문-연인의길-사양제로 이어지며, 오르막이 힘들다면 역순으로 걷는 것도 좋습니다.
- 금당사 가는 길목의 이산묘도 들러볼 만합니다. 단군, 태조 이성계, 세종대왕, 고종황제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고려 말 이성계가 왜구를 무찌르고 개선하던 중 머물러 시를 읊고 기도한 것을 기념해 새긴 '주필대'를 볼 수 있습니다.
마이산을 걷는다는 것은 단순한 산행이 아니라, 천년의 역사와 전설, 믿음과 간절함을 함께 밟아가는 경험이었습니다. 계절마다, 시간마다 표정을 달리하는 이 산은 두 번 다시 같은 모습으로는 만날 수 없기에 더욱 특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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